우기의 군대일상

D-407 급했던 아저씨의 작은 친구

황우기부기 2020. 8. 31. 22:02

 안녕하세요! 우기부기입니다!

 

 오늘은 CCTV상황병 근무를 섰을 때 있었던 일을 작게나마 얘기해보려고 해요.

 

 때는 바야흐로 오늘 12:00 - 14:00까지 CCTV를 서던 중이였어요. 제가 속한 ***통신대대는 '통신대대'라는 네임드에 걸맞게 새벽에 습하거나 추운 야외에서 상황근무를 서는 것이 아닌 지휘 통제실이라는 곳에서 부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많은 CCTV를 감시하면서 근무를 서요.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부대 울타리를 비추는 CCTV를 통해서 울타리 바깥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용 한 13시쯤 되었을까요? 한 아저씨가 어슬렁어슬렁 부대 울타리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부대 울타리 주변에 밭이 많아서 아 농사지으시는 분인가보다라고 넘기려 했지만, 낯선 아저씨의 복장은 정장차림으로 전혀 농사일을 하시는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주위를 불안하게 서성이며 부대 울타리를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부대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틈새로 들어오기 시작하는거에요.

 

 부대에 민간인이 출입하면 안된다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에 당장 부대를 담당하는 지휘관에게 보고를 드리려는 찰나, 아저씨의 허리춤에서 무엇인가 꺼내는 시늉을 했고 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뭐지 간첩인가?', '혹시 꺼내려고 하는게 폭탄인가?', '빨리 보고해서 조치를 한다면 포상휴가라도 받는 거 아닌가?'

 

 여러 설렘과 불안함을 가지고 아저씨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찰나, 그 때 만큼은 민감했던 저의 동체시력을 원망하기 시작했어요. 아저씨의 허리춤에서 나온건 다름아닌 그 아저씨와 태어났을 때부터 한평생을 함께했을 작은 친구였어요...

 

 저는 CCTV를 통해 우리 부대를 향해 노상방뇨를 하는 아저씨의 작은 친구를 정면으로 쳐다보게 되었고, 경악을 금치 못 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까 진짜 당혹스럽고 안본 눈 삽니다.

 

 많이 급하셨던 건지 볼일이 끝나자 작은 친구를 다시 황급히 허리춤에 숨긴 아저씨는 곧장 뒤돌아서 갓길에 세워둔 본인의 차량을 타시고 유유히 떠나셨어요.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야외에서 작은 친구를 꺼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참고로 저는 결국 지휘관님께 이 사실을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생전 처음보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낯선 아저씨의 '작은 친구'를 조금이나마 지켜준 하루였어요.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셨나요? 코로나로 인해 말썽인 세상에 마스크를 쓰고 외쳐봅니다.

 

'제발 밖에서는 마스크로 코랑 입 좀 가리고, 작은 친구도 바지 속에 잘 간직해둡시다.'

제가 본 작은 친구의 노력의 산물과 가장 비슷한 사진입니다.